결론부터 말하면, 이 장면은 삭제된 적이 없다. 미국 배급사들이 삭제를 요구했고, 지브리가 거절했으며, 최종 해외판에는 장면이 그대로 남아 있다. "삭제됐다"는 인식 자체가 사실과 다르다.
무슨 일이 있었나
《이웃의 토토로》(1988)에는 아버지 타츠오와 두 딸 사츠키, 메이가 함께 큰 욕조에 들어가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아버지는 욕조 안에서 딸들과 함께 크게 웃으며 목욕을 즐긴다. 일본에서는 가족 목욕이 일상적인 문화다. 장면 자체에 성적인 요소는 없다.

미국 배급사들은 이 장면을 문제삼았다. 애니메이션 연구자 모린 퍼니스(Maureen Furniss)가 쓴 《Animation: Art and Industry》에 따르면, 미국 측은 이 장면과 딸들이 다다미 위에서 뛰는 장면이 "미국 관객에게 이해되기 어렵다"는 이유로 삭제를 요청했다. 문화적 맥락을 모르면 오해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설마 미국 관객만 그렇게 생각할까?)
지브리의 대응
지브리는 거절했다. 단호하게. 배급 협상 당시 지브리는 관심을 가진 모든 배급사에게 "어떤 편집도 없다"는 원칙을 통보했다. 이는 《원령공주》(1997) 미국 배급 협상에서 하비 와인스타인이 편집을 요구했을 때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가 "No cuts"라는 문구와 함께 일본도를 보낸 사건과 같은 맥락이다. 지브리는 일관되게 원본 무결성을 배급 계약의 전제 조건으로 걸었다.
결과적으로 미국판, 영국판을 포함한 모든 해외 정식 배급판에서 목욕탕 장면은 삭제되지 않았다. 디즈니판(더빙: 다코타 패닝, 엘 패닝)에도, 이후 지케이디에스(GKIDS)판에도 장면이 그대로 있다.
왜 "삭제됐다"는 인식이 퍼졌나
삭제 요구가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요구 → 삭제"로 잘못 이해되는 경우가 생겼다. 실제로는 "요구 → 거절 → 원본 유지"다. 협상 과정이 결과로 오인된 것이다.
이 장면이 의미하는 것
목욕탕 장면은 서사 기능을 가진다. 타츠오는 두 딸과 함께 큰 소리로 웃는다. 이 웃음은 낯선 집에 대한 불안을 날려버리는 행동이다. 메이가 "유령이 있어도 괜찮아"라고 받아들이는 전환점이 이 장면 이후에 온다. 장면을 잘라내면 타츠오라는 인물이 가진 정서적 역할도 같이 잘린다.
지브리가 이 장면을 지킨 것은 문화적 자존심 때문만이 아니다. 이야기의 구조가 이 장면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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