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가 스크린에서 숨긴 것들/지브리 스튜디오

토토로 : 엔딩 크레딧의 택시 장면 — 어머니는 퇴원한 건가, 외출한 건가

by blade 2026. 4. 10.

엔딩 크레딧에 짧게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택시 한 대가 서 있고, 어머니는 이미 차에서 내려 서 있다. 아버지는 택시 뒷좌석에서 커다란 짐가방을 꺼내 들고 어머니의 등을 감싸며 집 쪽으로 향한다. 사츠키와 메이는 집 쪽에서 달려 나온다. 낙엽이 흩날리는 걸 보면 계절은 가을이다. 이 장면이 퇴원인지 일시 외출인지는 영화 본편 어디에도 명시돼 있지 않다. 하지만 장면 안의 디테일을 꼼꼼히 보면 어느 정도 판단이 가능하다.


짐의 유무가 첫 번째 단서다

아버지가 택시에서 꺼내 드는 것이 커다란 보스턴백이다. 환자가 짧은 외출을 할 때 이 정도 규모의 짐을 챙겨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외박이나 가족 나들이 수준이라면 손가방 하나가 전부다. 입원 기간 동안 쌓인 개인 물품을 정리해서 나온 양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다. 그리고 어머니는 빈손이다. 환자인 어머니가 짐을 직접 들지 않도록 아버지가 챙기는 구도 자체가, 이 귀환이 가볍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택시를 이용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자가용이 아닌 택시를 탄 점도 눈에 띈다. 아버지는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본편에서 타츠오가 차를 직접 운전하는 장면은 없다. 이사 때도 짐차를 따로 썼다. 즉 이 가족은 자가용이 없다. 택시는 이 가정에서 특별한 이동 수단이다. 퇴원처럼 짐이 많거나, 환자가 함께 이동하는 상황에 쓸 법한 선택이다. 단순 외출이었다면 버스나 기차가 더 자연스럽다.


계절은 본편 이후다

본편의 배경은 여름이다. 사츠키의 학교가 시작되는 초여름부터 시작해서, 메이가 옥수수를 들고 병원으로 가는 장면이 클라이맥스다. 옷도 민소매 원피스.

엔딩 크레딧의 낙엽 장면은 그 이후, 가을이다. 즉 이 택시 장면은 본편 사건으로부터 몇 달 뒤를 그린 에필로그다. 어머니의 병세가 본편 내내 호전 중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을쯤에 퇴원하는 것은 서사 흐름상 어색하지 않다.


본편의 복선과 연결된다

본편 중반, 아버지는 사츠키에게 "어머니가 좋아지면 함께 이 나무 밑에서 살 수 있을 거야"라는 취지의 말을 한다. 병원 면회 장면에서도 어머니의 상태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분위기가 유지된다. 이 흐름은 퇴원이 서사의 자연스러운 귀결임을 암시한다. 엔딩 크레딧의 택시 장면은 그 결말을 시각적으로 확인해주는 역할을 한다.


미야자키의 자전적 배경도 참고가 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어머니는 척추카리에스로 약 9년간 투병했다. 이 경험이 이 영화의 직접적인 모티프가 됐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척추카리에스는 결핵균이 척추뼈를 침범하는 질환으로, 1950~60년대에는 항생제 치료와 장기 안정 요양이 필수였다. 영화 본편에서 어머니의 병명은 명시되지 않지만, 이 배경을 알면 왜 퇴원이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왜 아이들이 어머니 없이 시골 생활을 해야 했는지가 납득된다.


일시 외출설의 약점

일시 외출이라는 해석도 완전히 불가능하진 않다. 하지만 커다란 짐가방의 존재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외출이라면 저 짐은 설명되지 않는다. 또 사츠키와 메이가 집 쪽에서 전력으로 달려 나오는 반응 강도는, 이미 여러 번 외출을 경험한 아이들치고는 과하다. 처음으로 집에 돌아오는 날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그 반응이 자연스럽다.


정리

엔딩 크레딧의 택시 장면은 어머니의 퇴원을 묘사한 것으로 보는 편이 설득력 있다. 아버지가 들고 내리는 큰 짐가방, 택시라는 이동 수단의 선택, 가을이라는 계절, 아이들의 반응 강도가 모두 그쪽을 가리킨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장면에 대해 별도의 코멘터리를 남기지 않았지만, 장면 안의 시각 정보가 이미 충분한 답을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