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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스크린에서 숨긴 것들/지브리 스튜디오

토토로 굿즈는 처음에는 환영받지 못했다: 지브리 최대 수익원의 아이러니한 탄생

by blade 2026. 4. 10.

스튜디오 지브리의 최대 수익원은 영화가 아니라 굿즈다. 그것도 처음에는 미야자키 하야오도, 스즈키 토시오도 만들기 싫었던 굿즈다. 이 아이러니한 구조가 〈이웃의 토토로〉(1988)에서 시작됐다.


두 창업자 모두 캐릭터 상품에 반대했다

지브리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세운 회사다. 스즈키 토시오는 지브리를 "장인이 운영하는 작은 동네 공장 같은 영화 제작사"라고 직접 표현했다. 그 맥락에서 캐릭터 굿즈는 애초부터 설립 목적과 맞지 않는 사업이었다.

미야자키는 특히 캐릭터 상품화에 강하게 반대했다. 창업자들이 공통으로 우려한 것은 단순한 취향 문제가 아니었다. "만약 회사가 갑자기 캐릭터 상품 제조사로 변해버린다면, 지브리가 왜 설립됐는지 아무도 모르게 될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설립 목적이 희석된다는 우려였다.


흥행 참패가 만든 역설

〈이웃의 토토로〉는 1988년 4월 개봉했다. 일본 내 배급 수입은 약 5억 8천만 엔으로, 제작비를 회수하지 못한 수준이었다. 극장 흥행만으로는 지브리를 지탱할 수 없었다.

스튜디오를 살린 건 TV 방영과, 뒤늦게 허가한 굿즈였다. 미야자키가 굿즈를 싫어했음에도 결국 허락하게 된 배경에는 이 절박한 경영 상황이 있었다. 원하지 않았던 선택이지만, 대안이 없었다.


인형 하나가 미야자키를 설득했다

1989년, 봉제 인형 제작사 선애로(Sun Arrow)가 토토로 인형 샘플을 들고 찾아왔다. 스즈키가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샘플의 완성도가 워낙 높아서 굿즈 자체를 반대하던 미야자키조차 그 솜씨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인형은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장에 풀렸다. 개봉 후 약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첫 라이선스 판매 첫해에 토토로 봉제 인형만 200만 개 이상이 팔렸다. 이후 수치는 더 가파르다. 일본 내 토토로 라이선스 상품 매출은 1999년 약 109억 엔, 2003~2007년 5년간 합산 560억 엔, 2010~2012년 3년간 약 199억 엔을 기록했다(위키피디아 공개 수치 기준).


'즉사(卽死)' 발언의 진짜 의미

스즈키 토시오는 아니메 뉴스 네트워크와의 인터뷰(2019)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른 회사에서 '우리 혼자서만으로도 2000억 엔 매출을 올릴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지브리의 캐릭터는 즉사한다. 캐릭터의 수명을 길게 유지하고 싶다."

2000억 엔을 올리려면 토토로를 온갖 상품에 무차별적으로 붙여야 한다. 그렇게 되면 캐릭터는 흔해지고, 희소성이 사라지고, 결국 팬들이 떠난다. 스즈키가 말한 '즉사'는 캐릭터의 상업적 소진을 뜻한다. 이 원칙 덕분에 토토로는 출시 35년이 넘은 지금도 '클래식'한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90년대 중반부터 이미 경영의 안전망이었다

90년대 중반, 원령공주(1997) 이전부터 토토로 굿즈 수익은 지브리 경영을 뒷받침하는 안전망 역할을 했다. 신작이 흥행하지 않아도 굿즈 수입이 스튜디오를 유지시키는 구조가 일찍부터 자리를 잡았다.

2014년 미야자키가 은퇴를 선언하고 제작 부문이 해체됐을 때, 지브리는 굿즈 사업과 지브리 파크, 전시회 등을 연계한 다각화 전략으로 전환했다. 이는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이 아니라, 이미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수익 구조를 포스트 미야자키 시대에 맞게 확장한 것이었다. 그 중 하나가 2022년 1차 개장한 지브리 파크이다.


결론

미야자키와 스즈키 모두 처음에는 캐릭터 상품에 부정적이었다. 극장 흥행 실패라는 현실이 굿즈의 문을 열었고, 선애로의 고품질 인형 샘플이 미야자키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스즈키는 이후에도 수익 규모보다 캐릭터 수명을 우선하는 원칙을 고수했다. 그 원칙이 토토로를 유행이 아닌 고전으로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지브리를 30년 넘게 먹여 살리는 구조를 완성했다. 싫다고 했던 굿즈가, 스튜디오의 생존 조건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