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가 스크린에서 숨긴 것들/지브리 스튜디오

'이웃의 토토로'에서 '이웃의'는 무슨 뜻인가 — 제목의 기원과 미야자키의 발언

by blade 2026. 4. 10.

결론

'이웃의 토토로(となりのトトロ)'에서 '이웃의(となりの)'는 토토로가 머나먼 존재가 아니라 바로 옆 일상 공간에 있는 존재임을 뜻한다. 이 단어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토코로자와 시에 거주할 당시 품었던 구체적인 지역 기반 구상에서 직접 나왔고, 초기 제목이 그 증거다.


초기 제목이 말해주는 것

이 영화의 최초 제목은 '토토로'가 아니었다.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는 저서 『토토로가 태어난 곳』(이와나미 쇼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다. 미야자키가 결혼 후 토코로자와 시에 정착해 주변을 산책하다가 이 작품의 구상을 떠올렸고, 최초 제목은 '토코로자와에 있는 이웃의 요괴(所沢にいるとなりのおばけ)' 였다. 그것이 축약되어 '이웃의 토토로'가 됐다는 것이다. 여기서 '오바케(おばけ)'는 유령이라기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 즉 요괴에 가까운 말이다.

같은 책에 수록된 미야자키 인터뷰의 제목 자체가 "토코로자와의 풍경 속에서 태어난 토토로의 세계" 다. 제목의 '이웃의'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미야자키가 살던 동네의 잡목림에서 느낀 "누군가 있는 것 같은 기분" 에서 나온 표현이다.


'이웃의'가 담고 있는 설계 의도

일본어 'となりの'는 단순히 '옆집의'를 가리킨다. 먼 산속의 신령이나 고대의 정령이 아니라, 담장 하나 너머 존재처럼 가깝다는 뜻이다.

이 거리감은 영화 전반에 걸쳐 구조적으로 반복된다. 메이는 정원에서 토토로를 처음 만나고(초반 정원 장면), 사츠키와 메이는 버스 정류장이라는 극히 일상적인 공간에서 토토로와 나란히 서 있다(버스 정류장 장면). 토토로는 인적 없는 산꼭대기가 아니라, 아이들이 매일 지나는 거대한 녹나무(쿠스노키) 안에 산다.

미야자키는 『로만 앨범 이웃의 토토로』(도쿠마 쇼텐) 수록 인터뷰에서 토토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存在してるだけで(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츠키와 메이가 구원받는다고. 토토로가 직접 개입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옆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웃의'라는 수식어는 이 설계와 정확히 일치한다.


영어 제목과의 비교

영어 제목은 'My Neighbor Totoro'다. 여기서 'My'가 추가됐다는 점이 흥미롭다. 일본어 원제에는 '나의'라는 소유격이 없다. 'となりのトトロ'는 특정 누군가의 토토로가 아니라, 그냥 '이웃에 있는 토토로'다.

영어 제목은 친밀감을 높이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원제가 가진 뉘앙스는 희석된다. 'Neighbor'는 인격적 존재로서의 이웃 사람을 상정하는 단어다. 반면 일본어 'となりの'는 '옆에 붙어 있는'이라는 공생의 감각에 가깝다. 자연 정령이 인간 생활권 바로 옆에 함께 존재한다는, 신도(神道)적 세계관에서 나온 거리감이다. 원제의 토토로는 사츠키와 메이만의 것이 아니라, 그 동네 누구라도 만날 수 있는 '옆에 있는' 존재다. 한국어 번역 '이웃의 토토로'는 일본어 원제의 구조를 비교적 충실히 따른다.


정리

'이웃의'라는 단어 하나가 이 영화의 장르를 결정한다. 신화적 신령이나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생활권 안에 함께 있는 존재. 미야자키가 토코로자와 시 잡목림에서 느낀 감각이 제목에 그대로 박혀 있다. 초기 제목 '토코로자와에 있는 이웃의 요괴'는 축약됐지만, 핵심 단어 '이웃의'는 끝까지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