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쿠로쿠로스케는 빛에 죽는 게 아니다. 서식 조건이 무너지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빛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빛이 상징하는 "사람의 생활"이 이 존재들을 밀어낸다.
영화 도입부, 메이가 다락방 문을 열자 마쿠로쿠로스케가 벽 틈새로 순식간에 사라진다. 빛이 들어오는 순간이다. 아버지 타쓰오는 "밝은 곳에서 갑자기 어두운 곳에 들어가면 눈이 어두운 것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마쿠로쿠로스케가 보이는 거란다"라고 말하고, 사쓰키가 "그림책에 나왔잖아?"라고 되묻자 "그래"라고 답한다. 수스와타리를 본 아이들이 그림책에서 알고 있던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붙인 것이다.
정식 명칭은 수스와타리(煤渡り) — "그을음이 옮겨 다님"이다. 낡은 집의 먼지와 그을음이 뭉쳐 생겨난 정령 같은 존재로, 서식 조건은 "어둠"보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고요한 공간"에 가깝다.

사쓰키 가족이 집을 청소하고 생활이 자리를 잡자, 수스와타리는 그날 밤 숲 쪽으로 일제히 날아간다. 인간이 쫓아낸 게 아니다. 집이 떠들썩해진 것 자체가 서식 조건을 무너뜨렸다. 칸타 할머니는 "해를 끼치는 건 아니야. 지금쯤 이사 갈 회의를 하고 있을 게다"라고 말한다. 소멸이 아니라 이사다.
수스와타리가 향하는 곳은 항상 숲이다. 근대화로 낡은 집들이 사라지면서, 이 존재들이 깃들 수 있는 고요한 공간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이 영화에서 문명에 밀려난 것들이 향하는 방향은 언제나 같다.

같은 수스와타리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도 등장한다. 이쪽은 팔다리가 달려 있고 석탄을 나르는 노동을 한다.

같은 존재인데 외형이 다른 이유는 카마지의 대사에서 확인된다. "일하지 않으면 마법이 풀려서 그을음으로 돌아간다" — 일을 시키기 위해 마법으로 팔다리가 붙은 것이다. 마법이 풀리는 건 단순히 쉰다고 해서가 아니라, 존재의 의미를 잃었을 때다. 팔다리가 있고 없고는 같은 존재의 다른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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