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웃의 토토로》에서 가장 많이 캡처되는 장면이 뭔지 생각해보면, 팽이 위에 올라탄 토토로가 밤하늘을 날고, 네코버스가 들판을 질주하는 그 장면들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 두 장면을 직접 잘라내려 했다.
《이웃의 토토로》는 원래 60분짜리 중편이었다. 《반딧불의 묘》와 동시 상영이 결정되면서 80분 이상으로 늘려야 했고, 미야자키는 분량을 채우는 대신 작품의 밀도를 높이는 쪽을 택했다. 상대작인 《반딧불의 묘》는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전쟁의 참상을 정면으로 다루는 묵직한 작품이었다. 그 옆에 나란히 걸리는 영화가 《이웃의 토토로》였다. 그 과정에서 미야자키는 스스로 제동을 걸었다. 당시 《아니메쥬》 편집부 출신으로 제작위원을 맡고 있던 스즈키 토시오 — 훗날 스튜디오 지브리의 대표 프로듀서가 되는 그 사람 — 에게 한 말이 스즈키의 저서 『일 도락(仕事道楽)』에 남아 있다.
"네코버스 같은 걸 내보낼 수 없잖아요. 그런 걸 내보내면 문예 작품이 아니잖아요."
더 직접적인 표적은 팽이 장면이었다. "근거도 없이 팽이를 타고 나는 건 이상하다"는 이유였다. 일본의 풍경과 정서를 담은 문예 영화를 만들려는 사람 입장에서, 근거 없는 비행 장면은 납득이 안 됐던 것이다.

곤란해진 스즈키는 같은 건물에서 《반딧불의 묘》를 연출 중이던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을 찾아갔다. 상황을 전했더니 다카하타의 반응은 짧았다.
"그거 재미있는데 아깝네요."
스즈키는 그 말을 들고 미야자키에게 돌아갔다. "다카하타 씨가 재미있는데 아깝다고 하던데요." 미야자키의 대답은 더 짧았다. "그럼, 내보내지."
다카하타는 미야자키를 직접 만나지도 않았다.
이 에피소드에서 흥미로운 건 다카하타가 "왜 살려야 하는가"를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논리도 없고 설득도 없다. "재미있다"는 판단 하나였다. 그리고 미야자키는 즉시 번복했다. 스즈키는 이렇게 회고했다. "미야 씨는 다카하타 씨의 한마디에 약하다."
미야자키가 "근거 없다"며 잘라낸 장면을, 다카하타는 "재미있다"는 말로 되살렸다. 지금 《이웃의 토토로》를 대표하는 두 장면의 근거는 결국 다카하타의 안목이었다.
참고 출처 스즈키 토시오, 『仕事道楽 新版 スタジオジブリの現場』(이와나미 서점) 기하라 히로카츠, 『ふたりのトトロ ― 宮崎駿と「となりのトトロ」の時代』(고단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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