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가 스크린에서 숨긴 것들/지브리 스튜디오

이웃의 토토로 — 기획 초기안과 완성된 영화의 차이

by blade 2026. 4. 11.

그림책에서 시작한 이야기

《이웃의 토토로》(1988)는 처음부터 극장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기획된 작품이 아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토토로의 이미지를 처음 스케치한 건 1970년대, 닛폰 애니메이션과 텔레콤 애니메이션 필름에 재직하던 시기다. 이때 작성한 이미지보드에는 메이를 닮은 외모의 5세 소녀 한 명이 토토로와 함께 등장한다. 외형은 메이에 가깝지만 성격은 사쓰키에 더 가까운 혼합 캐릭터였다(한국어 위키백과 《이웃집 토토로》 항목).

이 구상은 한 차례 TV 스페셜 포맷으로 검토됐다가 무산됐다. 본격적인 장편 제작 논의가 재개된 건 1986년 말이다. 미야자키가 기획서를 도쿠마 서점에 제출하면서다.


주인공은 원래 한 명이었다

완성된 영화의 주인공 구조는 10살 사쓰키와 4살 메이, 두 자매다. 하지만 초기 구상에서 주인공은 단 한 명이었다.

미야자키의 회고에 따르면, 당초 소녀가 토토로를 만나는 장면을 "비가 내리는 버스 정류장"과 "낮의 숲속" 두 가지로 고민하고 있었다. 영화화가 결정되기 약 1년 전, 이 두 장면을 하나의 서사 안에 담기 위해 주인공을 두 명의 자매로 나누는 방식을 선택했다(한국어 위키백과 《이웃집 토토로》 항목). 즉 메이는 원안에 없던 캐릭터였으며, 사쓰키 단독 기획에서 분리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나무위키 《이웃집 토토로》 항목).

두 자매 구조는 러닝 타임 문제와도 연결된다. 스즈키 토시오의 회고에 따르면, 초기 기획서의 상정 러닝 타임은 약 60분이었다. 동시 상영작 《반딧불이의 묘》(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상영 시간이 더 길다는 것을 인지한 미야자키가 분량 확장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두 자매 구조가 러닝 타임을 늘리는 해결책이 됐다(허프포스트 코리아 기사, 한국어 위키백과). 완성된 영화의 최종 러닝 타임은 86분이다.


포스터의 소녀는 누구인가

극장 개봉 포스터에는 사쓰키도 메이도 아닌, 두 캐릭터의 특징이 혼합된 소녀가 토토로 옆에 서 있다. 미야자키가 처음부터 이 영화의 상징 장면으로 구상한 건 "비 오는 버스 정류장에서 소녀와 토토로가 나란히 서 있는 구도"였다. 주인공이 두 명으로 분리되자 문제가 생겼다. 10살 사쓰키를 세우면 구도가 너무 어른스러워지고, 4살 메이를 세우면 구도 자체가 살지 않았다. 결국 원래 구상했던 7세 전후의 단독 주인공, 즉 사쓰키와 메이의 특징이 혼합된 소녀를 그대로 그려 넣는 방식을 택했다(허프포스트 코리아 기사). 이 포스터는 이후 디즈니와 GKIDS의 북미 DVD·블루레이 패키지에도 그대로 재사용됐다.


시대 배경 설정의 공백

완성된 영화에는 시대가 자막으로 명시되지 않는다. 스토리보드 지도에는 "쇼와 30년대 초(1955년 이후)"라고 기재되어 있지만, 미야자키는 《토토로의 아트》에서 "1955년이어야 했지만 고증이 철저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코타쿠).

나무위키의 달력 고증 분석에 따르면, 극 후반에 등장하는 달력에서 "8월 1일이 금요일"인 연도는 1950년대 중 1952년과 1958년뿐이다. 다만 초중반 달력은 1953년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내부 연도가 일치하지 않는다.

미야자키가 이 작품의 배경을 "TV가 없는 시대"라고 정의한 것은 단순한 연도 고증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에서 TV 방송이 시작된 건 1953년이지만, 시골까지 실제로 보급된 건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이다. 미야자키가 겨냥한 건 TV가 거실의 중심을 차지하기 직전, 즉 기술이 가족의 일상을 바꾸기 이전의 정서였다. 구체적인 연도보다 "그 시절의 감각"을 기준으로 배경을 설정했다는 뜻이다(《토토로의 아트》, 미야자키 발언).


기획 통과의 조건: 《반딧불이의 묘》와의 패키지

1986년 미야자키가 도쿠마 서점에 제출한 기획서는 단독으로는 통과되지 않았다. 무대가 1950년대 일본 시골이고, 소재가 조용하며, 중편 규모여서 단독 전국 개봉이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이후 타카하타 이사오의 《반딧불이의 묘》와 동시 상영하는 방식이 제안됐고, 《반딧불이의 묘》의 원작 소설 출판사인 신초샤가 공동 출자에 참여하면서 두 작품의 제작이 함께 확정됐다(한국어 위키백과). 토토로가 만들어진 건 이 패키지 구조 덕분이다.


삭제된 아이디어: 복수의 거대 토토로

초기 콘셉트 아트에는 거대 토토로가 여러 마리 등장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완성된 영화에서 이는 큰 토토로 한 마리와 중형·소형 토토로 두 마리로 정리됐다. 삭제된 복수의 거대 토토로 아이디어는 2002년 지브리 미술관 전용 단편 《메이와 고양이버스》에서 다양한 종류의 토토로 형태로 일부 부활한다(TV 트롭스 《My Neighbor Totoro》 항목).

메이와 고양이버스


남겨진 것들의 구조

초기 구상에서 완성본까지의 변화를 보면, 일관된 방향이 있다. 외부 갈등 장치를 줄이고 인물 관계로 무게를 옮겼다. 단독 주인공이 두 자매로 분리된 것, 복수의 거대 토토로가 하나로 정리된 것 모두 같은 방향의 선택이다. 갈등을 인물 내부와 관계에서 끌어내는 구조가 기획 과정의 수렴 결과물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