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영화 본편에 근거가 없는 내 추측이다.
모로에게는 친자식인 수컷 들개 형제가 둘 있다. 그리고 산이 있다. 모로는 산을 가리켜 "가엽고도 사랑스러운 내 딸"이라고 부른다. 인간 부모가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 내버린 아이를 모로가 거뒀다는 설정인데, 영화는 그 동기를 설명하지 않는다.
여기서 추측이 시작된다. 모로가 산을 얻기 전, 친자식 중 죽은 새끼가 있었던 건 아닐까. 산이 항상 몸에 두르고 다니는 들개 가죽이 그 새끼의 것일 수 있다. 모로가 죽은 새끼의 가죽을 산에게 입혔다면, 산은 태어날 때부터 들개의 냄새와 감촉 안에서 자란 셈이다. 직접적인 근거는 없다. 하지만 300년을 산 신이 굳이 인간 아이를 거두어 젖을 먹이고 딸이라 부른다는 건, 단순한 자비심만으로 설명하기엔 조금 과하다. 잃은 자리를 채우는 감정이 있었다면 자연스럽다.
그 추측이 맞다면, 산이 항상 들개 가죽을 두르고 사는 것도 다르게 읽힌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산이 입고 다니는 모피 외투(?)가 늑대 새끼 가죽이었다.

싸울 때만이 아니라 잠들 때도, 아시타카를 간호할 때도 들개 가죽 안에 있다. 모로에게 그 가죽은 잃은 새끼의 흔적이었을 것이다. 산을 죽은 새끼 대신 품으면서, 새끼의 가죽을 산에게 입혔다면 — 산은 태어날 때부터 들개의 냄새와 감촉 안에서 자란 셈이다. 의도적인 교육이 아니라 모로의 감정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리고 그 결과가 산의 정체성이 됐다.
"인간도 들개도 될 수 없는 그 애는 가엽고도 사랑스러운 내 딸이다." 모로는 산이 어중간한 존재임을 알면서도 딸이라 불렀다. 잃은 새끼를 대신해서가 아니라도, 그 감정은 충분히 모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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