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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스크린에서 숨긴 것들/지브리 스튜디오

미야자키 영화에 결핵 환자가 많은 이유 — 이웃집 토토로

by blade 2026. 4. 4.

《이웃집 토토로》(1988)에서 사츠키와 메이의 엄마 야스코는 인근 마을 병원에 장기 입원 중이다. 영화 본편 안에서는 병명이 언급되지 않는다. 아이들의 시점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다. 공식 설정 및 위키백과 등의 자료를 통해 결핵임이 알려져 있지만, 사츠키의 입을 통해서는 그저 "감기 같은 증세"라고만 표현된다.

시골 이사의 이유 중 하나도 "엄마 퇴원 후 맑은 공기"다. 결핵은 이 영화의 배경인 1952년 일본에서 여전히 장기 입원이 필요한 병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영화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의 어머니는 미야자키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약 9년간 척추 카리에스(결핵균이 척추에 침투하는 질환)로 병상에 누워 지냈다. 초기 몇 년은 완전히 누워만 있을 정도로 중증이었다. 야스코가 병실에서 앉아 아이들과 대화하는 장면은 실제 미야자키가 보고 싶었던, 혹은 기억 속의 호전된 어머니 모습이 투영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웃의 토토로

집 설정도 같은 맥락에 놓인다. 미야자키는 인터뷰에서 사츠키네 집이 원래 결핵 환자 요양을 위해 경치 좋은 곳에 지어진 건물이었으나, 환자가 죽은 뒤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고 밝혔다. 당시 일본의 교외 요양 문화가 배경에 녹아 있는 설정이다.

이웃의 토토로

영화 안에서 결핵은 서사 전면에 나오지 않는다. 기능은 하나다. 결말을 열어두는 장치. 퇴원할 수도, 못 할 수도 있는 상태여야 메이가 혼자 병원으로 달려가는 장면이 성립한다. 퇴원 연기 전보가 오는 장면이 긴장의 핵심인데, 결핵이라는 병의 속성—장기 요양, 예측 불가—이 그 구조를 지탱한다.

이웃의 토토로

《바람이 분다》(2013)에서도 여주인공 나오코가 폐결핵으로 죽는다. 그쪽은 소설가 호리 다쓰오의 동명 소설에서 가져온 설정이다. 미야자키는 실존 인물 비행기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의 삶에 소설 속 결핵 여성의 서사를 섞었다. 자신이 어린 시절 겪은 병의 이미지가 실존 인물의 이야기에 비극성을 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 셈이다.

바람이 분다

미야자키 작품에서 결핵이 반복되는 건 의도적 집착이라기보다, 그가 재현하려는 시대와 그 자신이 겪은 유년의 교차점에 그 병이 자꾸 놓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