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토토로》(1988)에서 사츠키와 메이의 엄마 야스코는 인근 마을 병원에 장기 입원 중이다. 영화 본편 안에서는 병명이 언급되지 않는다. 아이들의 시점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다. 공식 설정 및 위키백과 등의 자료를 통해 결핵임이 알려져 있지만, 사츠키의 입을 통해서는 그저 "감기 같은 증세"라고만 표현된다.
시골 이사의 이유 중 하나도 "엄마 퇴원 후 맑은 공기"다. 결핵은 이 영화의 배경인 1952년 일본에서 여전히 장기 입원이 필요한 병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영화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의 어머니는 미야자키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약 9년간 척추 카리에스(결핵균이 척추에 침투하는 질환)로 병상에 누워 지냈다. 초기 몇 년은 완전히 누워만 있을 정도로 중증이었다. 야스코가 병실에서 앉아 아이들과 대화하는 장면은 실제 미야자키가 보고 싶었던, 혹은 기억 속의 호전된 어머니 모습이 투영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집 설정도 같은 맥락에 놓인다. 미야자키는 인터뷰에서 사츠키네 집이 원래 결핵 환자 요양을 위해 경치 좋은 곳에 지어진 건물이었으나, 환자가 죽은 뒤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고 밝혔다. 당시 일본의 교외 요양 문화가 배경에 녹아 있는 설정이다.

영화 안에서 결핵은 서사 전면에 나오지 않는다. 기능은 하나다. 결말을 열어두는 장치. 퇴원할 수도, 못 할 수도 있는 상태여야 메이가 혼자 병원으로 달려가는 장면이 성립한다. 퇴원 연기 전보가 오는 장면이 긴장의 핵심인데, 결핵이라는 병의 속성—장기 요양, 예측 불가—이 그 구조를 지탱한다.

《바람이 분다》(2013)에서도 여주인공 나오코가 폐결핵으로 죽는다. 그쪽은 소설가 호리 다쓰오의 동명 소설에서 가져온 설정이다. 미야자키는 실존 인물 비행기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의 삶에 소설 속 결핵 여성의 서사를 섞었다. 자신이 어린 시절 겪은 병의 이미지가 실존 인물의 이야기에 비극성을 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 셈이다.

미야자키 작품에서 결핵이 반복되는 건 의도적 집착이라기보다, 그가 재현하려는 시대와 그 자신이 겪은 유년의 교차점에 그 병이 자꾸 놓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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