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가 스크린에서 숨긴 것들/지브리 스튜디오

미야자키 영화에 결핵 환자가 많은 이유 — 《바람이 분다》의 경우

by blade 2026. 4. 4.

《바람이 분다》(2013)의 여주인공 나오코는 폐결핵으로 죽는다. 병명이 명시되고, 각혈 장면이 나오고, 고원 요양원 생활이 그려진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연출한 장편 중 여주인공이 사망하는 유일한 사례다. (반딧불이의 묘는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작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연출이 아님)

이 영화의 주인공 지로는 실존 인물 두 명을 합쳐 만든 캐릭터다. 비행기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와 소설가 호리 다쓰오다. 비행기 설계 이야기는 호리코시 지로의 실제 삶에서, 결핵으로 죽어가는 여성과의 사랑은 호리 다쓰오의 동명 소설에서 가져왔다.

호리 다쓰오의 소설 《바람이 분다》에는 약혼녀 세츠코가 폐결핵으로 요양하다 죽는 이야기가 나온다. 세츠코의 실제 모델은 호리 다쓰오의 약혼녀 야노 아야코로, 1934년 요양 중 병이 악화돼 이듬해 결핵으로 사망했다. 결혼식을 올리기 전이었다. 호리는 그 경험을 소설로 썼다.

실존 인물 호리코시 지로의 아내 스마코는 결핵과 무관하게 천수를 누렸다. 현실에서 결핵으로 죽은 건 호리코시의 아내가 아니라, 소설가 호리 다쓰오의 약혼녀다. 미야자키는 두 실존 인물을 한 명으로 합치면서 호리 다쓰오 쪽의 결핵 서사를 가져왔고, 소설 속 약혼녀를 결혼까지 한 아내로 바꿨다. 병중에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이 애니메이션에 있는 이유다.

1930년대 일본에서 결핵은 '망국병'이라 불릴 만큼 광범위하게 유행하던 병이었다. 호리코시 지로의 비행기 설계 시기와 호리 다쓰오의 소설 배경이 같은 시대라는 점이 미야자키가 두 인물을 섞을 수 있었던 근거가 됐다.

나오코의 결핵이 영화에서 작동하는 방식은 《이웃집 토토로》 엄마의 경우와 다르다. 토토로에서 병은 "결말을 열어두는 장치"였지만, 《바람이 분다》에서 결핵은 서사의 중심축이다. 미야자키는 지로가 만드는 비행기와 나오코의 병을 같은 테마로 엮는다. 비행기는 아름답지만 전쟁 도구로 쓰여 결국 돌아오지 않고, 나오코의 사랑과 삶 역시 결핵으로 소멸해 간다. 아름답지만 파멸을 향해 달리는 두 축이 영화 전반에 걸쳐 평행으로 놓인다.

평소 냉정한 설계자의 면모를 보이는 지로가 나오코의 발병과 고통 앞에서는 무너지는 장면들이 이 평행 구조를 뒷받침한다. 나오코는 결핵을 알면서도 지로와 결혼하고, 병세가 심해지면서도 요양원 대신 지로 곁에 머문다. 지로의 여동생이 치료를 권하지만 지로는 외면한다.

요양원 장면은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의 영향도 받았다. 영화 속 독일인 캐릭터 '카스토프'는 《마의 산》 주인공에서 따온 가명이고, 영화 안에서 카스토프가 직접 《마의 산》을 언급하며 산 호텔을 비유한다. 《마의 산》 자체가 알프스 고원 결핵 요양원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결핵과 요양이라는 코드가 동시대 문학 전반에 깔려 있었다는 맥락이 이 장면에 있다.

토마스 만의 소설 - 마의 산

마지막 대사 수정도 주목할 만하다. 나오코의 원안 마지막 대사는 "살아요"가 아니라 "와요(저승으로)"였다.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에 따르면 너무 절망적이라 변경했다고 한다. 죽은 자가 남은 자를 저승으로 부르는 대사 대신, 살아남은 자의 삶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바람이 분다 - 엔딩 씬
바람이 분다 - 엔딩 씬

《바람이 분다》의 결핵은 미야자키 개인 기억과도 연결된다. 미야자키의 어머니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약 9년간 척추 카리에스(결핵균이 척추에 침투하는 질환)로 병상에 누워 지냈다. 나오코의 폐결핵과는 다른 병이지만, '아픈 여성', '곁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력함'이라는 구조는 같다. 미야자키가 오랫동안 호리 다쓰오의 소설을 마음에 품고 있었던 이유에는, 소설 속 결핵이라는 병과 자신의 유년 경험이 겹쳤다는 점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