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스튜디오 지브리의 첫 작품 《천공의 성 라퓨타》는 서구 제작자들에게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한 영향을 남긴 작품이다. 그 흔적은 발언 기록과 후속 작품의 구조 안에 남아 있다.
픽사의 라퓨타 레이저 디스크
존 라세터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1980년대 초반이다. 1981년 TMS 직원들이 디즈니를 방문해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클립을 상영했고, 라세터는 이 장면에서 "모든 연령대를 위한 애니메이션"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미야자키와 직접 만난 것은 1987년 일본 방문 때다. 이때 그는 《라퓨타》를 레이저디스크로 구입해 다섯 아들과 함께 봤다. 픽사 내부에서는 막힐 때마다 미야자키 작품의 장면을 상영실에서 틀었다고 공식 석상에서 말했다. 라세터가 쓴 헌정 글에는 다음 문장이 있다: "지금까지 나에게 가장 영감을 준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영화들이다."
《업》(2009)과의 연결은 간접적이다. 피트 닥터는 2004년 라세터의 요청으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영어 번역 작업을 맡았다. 이 경험이 다음 연출작 《업》에 영향을 줬다는 것이 통설이다. 《업》에서 하늘을 나는 집과 탐험자만 아는 미지의 장소라는 구도는, 라퓨타가 구축한 '하늘 위의 고립된 문명'이라는 모티브의 서구적 변형으로 읽힌다.

디즈니 《아틀란티스》의 직접 참조
《아틀란티스: 잃어버린 제국》(2001)은 라퓨타와의 연관성이 가장 직접적으로 거론된 작품이다.

감독 게리 트루스데일과 커크 와이즈는 표절 의혹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부인했지만, 미야자키 작품을 주요 영향원으로 인정했다. 구조적 유사성은 뚜렷하다. 마법 결정석이 문명 에너지의 핵심이고, 거대 로봇 수호자가 존재하며, 군사 세력이 고대 문명의 힘을 탈취하려 한다. 《라퓨타》에서는 무스카가 비행석을 무기로 전용하고, 《아틀란티스》에서는 루르크 사령관이 결정을 탈취하려 한다. 무대가 하늘과 바다로 갈릴 뿐 서사 골격은 거의 같다.
스팀펑크 장르와 라퓨타의 위치
《스팀펑크 바이블》은 《라퓨타》를 "최초의 현대 스팀펑크 클래식 중 하나"로 기록한다. 주목할 점은 시기다. '스팀펑크'라는 용어 자체가 장르 문학에서 정착된 것이 1980년대 후반이다.


《라퓨타》는 그 명칭이 굳어지기도 전에 이미 19세기풍 비행기계, 탄광 마을, 고대 병기가 공존하는 시각 문법을 완성했다. 이후 서구 스팀펑크 미디어가 참조한 것은 장르의 원형이 아니라 《라퓨타》가 먼저 구성한 이미지들이다.
'영화가 스크린에서 숨긴 것들 > 지브리 스튜디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라퓨타의 세계관과 지브리가 '장르적 틀'을 졸업한 이유 (0) | 2026.04.08 |
|---|---|
| 극장에서 망한 영화가 지브리 1위가 된 사연 — 라퓨타 재평가의 경로 (1) | 2026.04.08 |
| 애니메이션 한 장면이 트위터 서버를 멈출 뻔했다 — 천공의 성 라퓨타 "바루스" 사건 (0) | 2026.04.08 |
| 라퓨타의 파즈와 미래소년 코난의 코난 — 미야자키가 같은 소년을 반복해서 그리는 이유 (0) | 2026.04.08 |
| "소재가 수수하다"는 이유로 기획이 거절당한 이웃집 토토로 (0) | 2026.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