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공의 성 라퓨타의 일본 흥행 관객 수는 전작 나우시카(91만 명)보다 낮았다. 지브리 법인 설립 이후 첫 번째 작품으로 기대가 컸던 만큼, 수치 자체는 아쉬운 결과였다. 그런데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후 인터뷰에서 라퓨타를 "실패"라고 부른 건 흥행 숫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실패가 작품 방향성을 가리킨다는 게 더 중요하다.
라퓨타는 지브리의 첫 번째 작품이었다. (나우시카는 지브리 스튜디오 설립 전의 작품이다) 그 때문에 처음부터 오락성과 흥행에 무게를 뒀다. 악당 무스카는 미야자키 작품 전체를 통틀어도 칼리오스트로의 라살, 코난의 레프카와 나란히 놓일 만한 구제불능형 인물이다. 미야자키 커리어에서도 이런 캐릭터는 소수에 속한다. 미야자키 자신의 관심사인 자연, 문명 비판, 다층적 갈등 같은 주제는 이 영화에서 배경 수준에만 머문다. 시타가 "땅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 주제의 중심일 수 있으나, 그 말은 영화 전체를 이끌어가지 못한다.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추격, 전투, 탈출로 채워진다.

미야자키는 라퓨타 개봉 직후인 1986년 11월, 곧바로 토토로 기획서를 도쿠마 서점에 제출한다. 무대는 1950년대 후반 일본 시골이었고, 소재는 수수했다. 처음엔 60분짜리 중편 영화로 기획됐다. 기획회의는 단독 전국 개봉이 어렵다는 이유로 처음에 통과시키지 않았다. 이 기획은 다카하타 이사오의 반딧불의 묘와 동시 상영하는 방식으로 승인됐고, 최종적으로는 90분짜리 장편이 됐다.

이 흐름이 단순한 우연은 아니다. 라퓨타에서 미야자키가 경험한 건 오락성 과잉, 다시 말해 자신이 실제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흥행 문법에 밀려나는 경험이다. 토토로는 그 반대편에 있다. 악당이 없고 갈등 구조도 없다. 죽어가는 어머니, 낯선 환경, 어린아이의 불안이 이야기의 동력이다. 라퓨타가 '하늘로 올라가는' 이야기라면, 토토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땅에 붙어 있다.
그 차이가 기획 통과 과정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토토로의 기획서는 한 번에 통과되지 못했다. "소재가 수수하다"는 게 이유였다. 라퓨타 이후 지브리가 요구받은 건 여전히 대형 오락 영화였다는 뜻이다. 미야자키는 그 압력에 맞서 중편 기획을 밀어붙였고, 동시 상영이라는 타협안으로 겨우 제작 승인을 얻어냈다.
라퓨타의 성과가 토토로를 가능하게 했고, 라퓨타에서의 불만족이 토토로의 형태를 결정했다. 둘은 흥행 성적이 아니라 창작 방향의 레이어에서 직접 연결된다.
그 토토로는 1차 6주 개봉 관객이 45만 명이었다. 반딧불의 묘와 동시 상영이었으니 실질 수익은 라퓨타의 절반, 극장 흥행만으로는 적자였다. 몇 년 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개봉 첫날 하루에만 42만 명을 모은 것과 비교하면 규모가 보인다. 토토로가 지브리의 얼굴이 된 건 TV 방영과 비디오 렌탈의 인기가 쌓인 훨씬 이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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