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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스크린에서 숨긴 것들/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 한 장면이 트위터 서버를 멈출 뻔했다 — 천공의 성 라퓨타 "바루스" 사건

by blade 2026. 4. 8.

**천공의 성 라퓨타(1986)**는 1988년부터 일본 지상파에서 정기적으로 재방영되어 왔다. 단순한 명작 재방송이 아니다. 방영될 때마다 트위터 서버가 비상 대응 체제에 돌입한다.


바루스 축제란

영화 후반부, 무스카가 셰타와 파즈를 위협하는 장면에서 두 주인공은 멸망의 주문 **"바루스(バルス)"**를 외친다.

라퓨타가 붕괴하는 이 순간, 일본 시청자들은 동시에 트위터에 "바루스"를 입력한다. 이 집단 행동은 2003년 2CH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창기 목적은 2CH 서버를 마비시키는 것이었고, 실제로 재방영 때마다 게시판이 다운되는 일이 반복됐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무대가 트위터로 옮겨갔고, 이후 전 세계적인 데이터 현상이 됐다.


수치로 본 기록의 흐름

 

연도방영  회차 TPS (초당 트윗 수) 비고
2011년 12월 9일 13회 25,088 당시 세계 신기록
2013년 8월 2일 14회 143,199 당시 기준 세계 기록 경신 (오후 11시 21분 50초)

2011년 기록 당시 직전 세계 기록은 비욘세의 임신 발표로 세워진 8,869 TPS였다. 라퓨타가 이 기록을 약 2.8배나 뛰어넘었다.

2013년 기록은 그보다 다섯 배 이상이다. 트위터 재팬은 방영 수 주 전부터 미국 본사에 서버 대응을 요청했고, 방영 당일 샌프란시스코 엔지니어들이 새벽에 대기하며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했다. 트위터 재팬은 이후 공식 계정에서 "올해는 바루스를 버텨낼 수 있을까"라는 식의 메시지를 올리며 이 현상을 아예 마케팅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 현상의 구조

단순히 "팬들이 열광했다"는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이 현상에는 세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진다.

첫째, 동기화 가능한 단일 순간이 있다. "바루스"는 영화 전체에서 단 한 번 나오는 대사다. 모든 시청자가 같은 방송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고, 기다리는 순간이 명확하다.

둘째, 참여의 장벽이 없다. 트위터에 두 글자를 입력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요구되지 않는다.

셋째, 집단 참여 자체가 콘텐츠가 된다. "바루스 축제(バルス祭り)"라는 명칭이 따로 붙을 만큼, 참여 행위 자체가 이미 문화 이벤트로 자리잡았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거의 모른다

지브리 프로듀서 스즈키 도시오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마 세상에서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을 것이다. 바로 미야자키다. 말한 적도 없고, 주변 사람들도 말하지 않는다."

이후 미야자키 감독 본인도 "젊은 사람들이 방영 때 뭔가를 한다"는 정도로는 인지하고 있다는 후문이 있다. 다만 이 현상에 별다른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이 주변의 공통된 전언이다.

트위터 공동창업자 잭 도시도 마찬가지였다. NHK 인터뷰에서 "바루스 축제가 뭔가요?"라는 질문에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다고 답했다. 트위터 본사가 서버를 증설하며 대비해온 이벤트임에도 불구하고.


결론

바루스 현상은 영화의 서사 구조가 집단 행동의 설계도가 될 수 있음을 실증한다. 멸망의 주문이라는 설정, 단 한 번 등장하는 대사, 실시간 방송이라는 조건이 결합해 초당 143,199건의 트윗을 만들어냈다. 이는 서사가 관객의 행동을 얼마나 정밀하게 조율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흔치 않은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