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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스크린에서 숨긴 것들/지브리 스튜디오

토토로와 원령공주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 1980년 이미지보드의 두 갈래

by blade 2026. 4. 2.

미야자키 하야오가 1980년에 구상한 원령공주는 1997년 완성작과 거의 별개의 작품이다. 구상 기간 16년, 제작 기간 3년이라는 숫자 뒤에는 수많은 설정이 쓰이고 버려진 흔적이 있다. 그중 일부는 없어져서 다행이고, 일부는 없어진 게 아쉽다.


없어져서 다행인 것 — 미녀와 야수 구조

1980년 미야자키가 최초로 구상한 원령공주는 사실상 일본판 미녀와 야수다. 전쟁에서 돌아온 사무라이가 폭풍을 피해 숨어든 동굴에서 거대한 괴물(모노노케)을 만나고, 목숨을 구하는 대가로 딸을 내줘야 한다는 설정이다(Princess Mononoke: The First Story, 1980 이미지보드 기반). 주인공인 딸은 이름도 없이 '셋째 딸'로만 불리고, 모노노케와 함께하면서 유대를 쌓는 구조로 전개된다.

미야자키 본인이 이 초고의 문제를 직접 지적했다. "이야기의 세계가 기존 영화와 민간 설화에 지나치게 기대고 있다. 일본사와 농경 문화가 격변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삼으면서도 그 맥락이 이야기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너무 깔끔하게 맞아떨어진다"(Princess Mononoke: The First Story 후기). '깔끔하게 맞아떨어진다'는 말은 곧 갈등이 도식적이라는 뜻이다. 원령공주의 핵심 — 인간도 자연도 선악으로 나뉘지 않는다는 구도 — 은 이 구조로는 불가능하다. 에보시가 산업화를 주도하면서도, 나병 환자와 성 노예를 받아들이는 인물로 설계될 수 없고, 산이 인간을 증오하면서도 아시타카를 살리는 인물로 기능할 수도 없다.

1980년 버전의 모노노케는 고양이와 곰을 섞은 듯한 외형으로, 이 하나의 원형에서 두 갈래가 파생됐다. 외형은 토토로로 이어졌고, '딸을 데려가는 괴물'이라는 설정의 긴장감은 무로마치 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서사시로 발전했다(Ghibli Wiki, Princess Mononoke). 하나의 뿌리에서 귀여운 판타지와 장엄한 대서사시가 갈라진 셈이다. 원령공주가 미녀와 야수 구조를 유지했다면, 이 분기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EqRgaKM_Ngs

 


없어져서 아쉬운 것 ① — 제목 '아시타카 셋기'

미야자키가 최종까지 고집한 제목은 'アシタカせっ記(아시타카 셋기)'였다. '記(기)'는 기록을 뜻하는 일반 한자고, 앞의 'せっ'은 미야자키가 직접 만든 창작 한자다. 형태는 旧字体 초두(艸) 아래 耳(이) 두 개를 붙인 회의문자로, 일본어 입력으로는 변환 자체가 불가능하다. 의미는 "풀숲에 묻혀 사람의 귀에서 귀로 전해진 이야기", 즉 정사에 남지 않고 구전으로만 이어진 이야기다(Art of Princess Mononoke, Viz Media; 문춘온라인 2023).

제미나이로 그려봤다

미야자키는 이 제목을 원했고,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는 '원령공주'를 원했다. 스즈키는 미야자키가 예고편 제작에 관심을 끊은 틈을 타 예고편에 '모노노케 히메' 제목을 박아버렸고, 미야자키는 분노했다(Ghibli Wiki).

채택된 '원령공주'는 마케팅에서 유리하지만 영화 자체에는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 제목이다. 산은 공주가 아니고, 모노노케는 산의 이름이 아니라 신적 존재들을 가리키는 일반 명사다. 반면 '아시타카 석기'는 이 영화가 산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시타카의 여정임을 정확히 짚는다. 사실 이 영화는 아시타카의 출발로 시작해 아시타카의 선택으로 끝난다.

스즈키는 이 비판에 반론을 제기한다. "아시타카는 관찰자이자 중재자일 뿐, 관객이 감정적으로 몰입하고 폭발하는 지점은 산"이라는 것이다. 흥행 결과를 놓고 보면 스즈키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고, 미야자키도 나중에는 이를 인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제목이 흥행을 위해 주인공의 무게중심을 옮긴 것이라면, 그 자체가 비판의 근거가 된다. 제목 하나가 영화의 중심을 어긋나게 고정했다.


없어져서 아쉬운 것 ② — 결말의 여러 후보들

지브리 메이킹 다큐멘터리 원령공주는 이렇게 만들어졌다(2001, 400분)에 따르면, 미야자키는 결말을 두고 오랫동안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공개된 기록에 따르면, 고민의 핵심은 산의 거취가 아니라 아시타카의 생사저주의 잔존 여부였다. "아시타카가 죽어야 하는가, 살아야 하는가", "팔의 저주가 완전히 사라져야 하는가, 흔적이 남아야 하는가"라는 두 문제였다(Ghibli Fandom Wiki).

채택된 결말은 저주의 흔적이 남은 채로 아시타카가 살아가는 것이다. 이는 "재앙과 증오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며, 인간은 그것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주제 의식과 일치한다. 기각된 결말들 — 특히 아시타카가 죽는 안 — 은 그 서사적 무게가 어땠을지 알 수 없다. 아시타카가 죽는 결말이 채택됐다면 산과의 관계는 미완성이 아니라 비극으로 확정됐을 것이고, 영화의 톤은 지금과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없어져서 아쉬운 것 ③ — 에보시의 과거

미야자키가 제작 과정에서 작성한 메모(「もののけ姫」はこうして生まれた。, 도쿠마쇼텐)에는 에보시의 과거가 상세히 기록돼 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에보시는 타타라 마을의 다른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몸이 팔렸고, 왜구 두목의 아내가 됐다. 거기서 세력을 키운 뒤 남편을 직접 죽이고, 석화시(총기) 기술과 금품을 챙겨 일본으로 돌아왔다. 곤자(権三)는 그때 유일하게 따라온 부하다.

이 설정은 본편에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없으면 에보시라는 인물을 절반밖에 이해할 수 없다. 왜 그녀가 팔려온 여성들을 거둬들이는지, 왜 신조차 두려워하지 않는지, 왜 아시타카에게 "사카시라에 간신한 불운을 과시하지 마라"고 일갈하는지 — 전부 이 과거가 근거다. 본편이 이 설정을 직접 서술하지 않은 건 절제의 미학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관객 대부분이 에보시를 단순한 개발 악당으로 읽고 끝낸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없어져서 다행인 것 ② — 에보시의 사망 엔딩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는 에보시가 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거는 명확했다. "저런 신을 신으로도 여기지 않는 근대 합리주의자는 숙명적으로 죽어야 한다"(TECH WIN 1997년 10월호 별책 수록 인터뷰). 미야자키는 오랜 고민 끝에 "역시 에보시는 죽일 수 없다"는 결론을 냈다. 완성작에서 에보시는 오른팔을 잃고 살아남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말한다.

스즈키의 논리는 서사적으로 깔끔하다. 하지만 에보시를 죽이면 영화의 핵심 구조가 무너진다. 원령공주는 선악의 대립이 없는 영화다. 에보시가 숙명적으로 죽는 순간, 그 구조는 "자연을 파괴한 자는 벌을 받는다"는 도덕 우화로 납작해진다. 미야자키가 에보시를 살린 것은 감상이 아니라 주제에 대한 판단이었다. 이건 없어져서 다행인 엔딩이다.


16년간의 구상에서 살아남은 것은 무로마치 시대라는 배경과 인간-자연 갈등이라는 주제뿐이다. 나머지는 전부 교체됐다. 초기 설정들이 버려지지 않았다면 토토로도, 완성작 원령공주도 없었을 것이다. 컷이 작품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