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에서 두 사람이 이별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착각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원령공주 제작 당시 인터뷰와 공식 설정집(로망 앨범 등)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가요이콘(通い婚)**으로 직접 규정했다. 추측이나 해석이 아니라 감독 본인이 설계한 구조다. 아시타카는 타타라 마을에서 살고, 산은 숲에서 살며 가끔 만나러 간다. 열린 결말이 아니라 확정된 결혼이다.

(이게 프로포즈였다니... 이런 건조한...)

"신랑 아시타카는 어떠한 저주와 시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신부 산양의 곁에서 끝까지 함께 살아내겠습니까? "

"신부 산은 거친 숲과 증오의 폭풍 속에서도 변치 않는 신뢰로, 신랑 아시타카군과 함께 내일을 향해 살아가겠습니까?"

관객이 이별로 읽는 엔딩 장면은 사실 결혼 선언이다. 미야자키는 성우 연기 지도 당시 "이것은 청혼이고 승낙이다"라고 직접 설명했다. 그림 콘티에도 산의 미소가 아시타카를 받아들였음을 나타내는 지시가 담겨 있다. 인터뷰에서 그는 아시타카가 타타라 마을과 산 사이에서 "찢기고 상처투성이가 되겠지만 굴복하지 않고 살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낭만적 수사가 아니라 캐릭터 설계다.
가요이콘은 헤이안 시대(794~1185)에 일반적이었던 혼인 형태다. 부부가 한 집에 살지 않고, 남편이 아내의 거처로 주기적으로 찾아가는 방식이다. 동거가 결혼의 전제가 아니었던 시대의 제도다.
이들의 가요이콘은 단순한 별거가 아니다. 인간의 문명과 신성한 자연이라는 두 세계가 서로를 소멸시키지 않으면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철학적 타협점이다. 경계를 허물지 않는 것이 이 사랑의 전제 조건이다. 산은 숲을 떠나지 않고, 아시타카는 타타라 마을을 버리지 않는다. 둘이 하나가 되는 순간, 인간과 자연의 공존은 끝난다. 미야자키는 그것을 알기 때문에 융합 대신 왕래를 선택했다.
이 구조가 영화 본편 안에서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은 비판받을 수 있다. 인간과 자연의 화해라는 거짓 환상을 주지 않기 위해, 미야자키는 의도적으로 불편한 거리감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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