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10년.
10년 만에 처음으로 내 방 대청소를 실시했다.
구석구석 뒤지다보니 먼지 쌓인 서랍 안에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쓰시던 책들과 필기도구들이 나왔다.
모든 것을 컴퓨터로만 기록하는 나는 필체가 엉망이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정자체로 모든 것을 기록하셨고, 꽤나 명필이셨다.
아버지의 먹과 벼루도 남아있다. 서예도 꽤나 즐기셨다.
이것저것 적어놓으신 아버지의 메모와 계산서들.
2.
요즘도 하루에도 몇 번 씩 아버지가 생각난다.
난 감성적인 인간은 아니다.. 그런데..
남자에게 아버지는 언제나 든든한 언덕 아니던가.
회사 일로 먼지투성이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가면 따뜻한 목소리로 나를 맞아주는 내 편이 있다는게 이렇게 그리워질지는 몰랐다.
3.
회사 컴퓨터에는 창경궁 가족 나들이 때에 찍은 아버지와 가족 사진이 꽂혀있다.
정장을 차려입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들이용 옷을 예쁘게 차려입은 이모, 누나 그리고 나.
난 그 체크무늬 반바지를 싫어했다.
반바지와 함께 입어야하는 긴 양말은 더 싫었다.
일을 하다가 간간히 젊은 아버지와 5살의 어린 내가 앉아있는 그 날 나들이 사진을 본다.
사진 속의 젊고 늠름한 아버지 앞에서 난 언제나 5살이다.
4.
아버지는 매일 새벽 3시에 깨어서 화장실에 갔다가 물 한 잔을 마시고 다시 잠이 들곤 하셨다.
내 방 불이 켜있는걸 발견하면 노크를 하고, 문 뒤에서 한 말씀 하셨다.
'회사 출근해야지. 늦었는데 자거라 얘야'
나는 언제나 건성으로 대답했다.
'네.. 먼저 주무세요.'
3시에 노크해주는 아버지가 안 계시니 불면증이 더 심해진다.
5.
성모병원 901호 침대 위에 누워서 우리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은 '고맙다'였다.
뭐가 고마우셨던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1..
아버지의 정자체 메모를 계속 읽다보니 눈물이 나왔다.
눈물을 참다보니 울음이 나왔다.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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