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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스크린에서 숨긴 것들/기타 영화들

프로젝트 헤일메리, 그레이스는 에리드에서 왜 멀쩡히 걷나

by blade 2026. 7. 8.

결론부터 말한다. 그레이스가 에리드에서 지구인처럼 걸어다니는 장면은 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앤디 위어의 원작 설정 자료에 따르면 에리드의 표면 중력은 2.09G다. 대기압은 29기압, 지표 온도는 210도다. 행성 질량은 지구의 8.47배, 반지름은 약 12,835킬로미터로 지구의 두 배에 가깝다. 슈퍼 지구 범주에 들어간다.

문제는 중력값이다. 2G 환경에서 70킬로그램인 사람의 체감 무게는 140킬로그램이 된다. 그래. 몸무게는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혈액의 단위 무게도 2배로 늘어난다, 심장은 두 배의 압력에 맞서 뇌까지 피를 뽑아 올려야 한다. 흉곽 근육은 늘어난 무게에 맞서 폐를 부풀려야 한다. 인간이 2G 환경에서 장기간 생존한 실증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에리단인이 지어준 바이오돔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중력은 물질을 뚫고 작용하는 힘이다. 지구 대기 환경을 흉내낸 온실이라도, 그 안의 중력값은 여전히 2.09G다. 바이오돔의 벽이 아무리 두꺼워도 이 값을 낮출 수는 없다. 회전 원심력으로 상쇄하려면 돔 전체가 초당 수 미터로 회전해야 한다. 에리드 행성 지표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조건이다.

원작 소설은 이 문제를 시간으로 얼버무린다. 소설의 결말은 그레이스가 에리드에 도착한 지 16년 뒤 시점에서 열린다. 위키피디아 줄거리 요약에 명시된 "Sixteen years later"라는 표현이 근거다. 즉 그레이스는 오랜 세월에 걸쳐 서서히 적응했다는 서사가 깔려 있다.

영화는 이 시간 서사조차 걷어낸다. 그레이스는 우주선 사고에서 회복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해변 뷰가 있는 바이오돔에서 로키와 재회한다. 감독 필 로드와 크리스 밀러는 슬래시필름 인터뷰에서 엔딩 연출의 초점을 "선택의 감정적 무게"라고 밝혔다. 물리학적 개연성은 그 논의에서 빠져 있다.

앤디 위어의 작품군 안에서 이 처리는 이례적이다. 화성탈출은 마크 와트니의 감자 재배 열량까지 논문 수준으로 다뤘다. 헤일메리 본편도 아스트로파지의 델타-v와 도플러 편이를 수식으로 검증했다. 그러나 엔딩의 중력 문제만은 서사적 감동에 밀려 사라졌다.

가장 큰 손실은 로키와 그레이스의 우정이 물리적 대가 없이 성립한다는 착각이다. 그레이스가 잃은 것은 지구라는 장소뿐이다. 몸은 잃지 않는다. 2G의 대가는 서사에서 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