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사빠 :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
원령공주에서 산은 인간 증오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영화가 끝날 때 산은 아시타카 한 명만을 예외로 둔다. 그 예외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가 이 포스트의 주제다.
전환 이전까지의 산
산은 등장 시점부터 일관되게 인간을 적으로 대한다. 타타라 마을 습격 장면에서 산은 에보시의 목을 직접 노린다. 아시타카를 처음 마주치는 장면에서도 산의 첫 반응은 공격이다. 부상당한 아시타카를 향해 칼을 들이미는 것이 산의 기본값이다. 영화 전반부에서 산이 인간에게 보이는 반응은 예외 없이 적대다.
전환 장면의 실제 내용
아시타카가 "너는 아름답다"고 말하는 순간 산이 멈춘다.


이후 아시타카가 의식을 잃자 산은 그를 시시가미 앞으로 옮긴다. 그렇다면 산이 칼을 멈추고 아시타카를 살리기로 결심한 근거는 무엇인가. 영화가 제시하는 건 "아름답다"는 대사 하나뿐이다.
에보시와의 비교
산은 에보시에게는 끝까지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에보시는 나병 환자를 거두고 여성들을 해방시킨 인물이지만, 산에게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같은 인간인데 아시타카에게만 작동한 전환의 조건이 무엇인지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잘생겼다"는 대사가 유일한 변수라면, 산의 인간 증오는 처음부터 절대적인 이념이 아니었던 셈이다. 더 정확히는, 이성에 대한 감정적 반응 앞에서 이념이 작동을 멈춘 것이다. 환경 서사의 핵심 긴장을 떠받치던 캐릭터가 그렇게 무너진다.
장르 충돌
결말에서 산은 "아시타카는 좋지만 인간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대사가 뜬금없는 건 아니다. 선물 받은 펜던트를 목에 걸고 다니고, 아시타카가 안을 때 거부하지 않고, 결말에서 "좋다"고 인정하는 흐름은 단계가 있다. 산의 감정은 실제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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