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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스크린에서 숨긴 것들/지브리 스튜디오

센과 치히로는 굉장히 불친절한 영화다

by blade 2026. 3. 30.

 

이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관객이 궁금해할 게 뻔한 것들을 끝까지 말하지 않는다. 


1. 유바바는 어디에 갔다 오는가

유바바는 영화 중반 이후 몇 차례 외출한다. 하쿠가 부재중인 유바바를 대신해 욕탕을 관리하는 장면이 있고, 치히로가 유바바 없이 움직이는 서사도 이 외출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유바바가 어디를 가는지, 무엇을 하러 가는지 영화는 한 번도 말하지 않는다. 대사도 없고, 귀환 후 설명도 없다. 욕탕 바깥 세계에 유바바의 또 다른 역할이 있다는 암시조차 없다. 그냥 나갔다가 돌아온다.


2. 기차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치히로 일행이 제니바를 찾아가기 위해 타는 기차는 편도만 운행한다. 린은 "옛날엔 돌아오는 기차도 있었는데"라고 말한다. 기차가 지나치는 역들은 화면에 잠깐 비치지만 이름도, 승객도, 용도도 설명되지 않는다. 창밖으로 보이는 수몰된 풍경 속 건물들도 마찬가지다. 기차에 탄 다른 승객들은 반투명한 실루엣으로만 존재하고, 어디서 타서 어디 내리는지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편도만 남은 이유도 설명 없다. 다만 역 이름들은 일관된 패턴을 가진다. 화면에 잡히는 역들은 沼原(누마하라, 늪 벌판), 北沼(기타누마, 북쪽 늪) 등 전부 늪과 물 관련 한자로 구성돼 있고, 종착역인 沼の底(늪의 바닥)까지 이 노선 전체가 늪 지명으로 일관된다. 역 이름만큼은 설계돼 있다. 그 외의 것들은 설명되지 않는다.


3. 보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유바바의 아들 보는 욕탕 꼭대기 층 밀실에 갇혀 자란다. 유바바가 직접 키우고 있고, 보를 향한 집착도 강하다. 공백은 두 개다. 첫째, 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영화 안에 단서가 전혀 없다. 대사도, 사진도, 언급도 없다. 쌍둥이 자매인 제니바는 혼자 산다. 유바바의 파트너가 누구였는지, 지금도 존재하는지, 왜 등장하지 않는지 — 영화는 이 질문 자체를 무시한다. 둘째, 유바바가 왜 보를 저 정도로 과잉보호하는지도 설명되지 않는다. 밖에 나가면 병에 걸린다고 믿게 만들었지만, 그 믿음이 어디서 왔는지, 유바바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나오지 않는다. 과잉보호의 원인이 없으니 유바바의 모성도 맥락 없이 떠 있다.


4. 하쿠는 언제 유바바와 계약했는가

하쿠는 치히로보다 먼저 욕탕에 들어와 있었다. 치히로가 처음 도착했을 때 하쿠는 이미 유바바의 수하로 일하고 있다. 언제, 어떤 경위로 계약했는지는 하쿠 본인의 대사로는 나오지 않는다. 가마 할아범의 전언으로 "갈 곳이 없다며 마법의 힘을 배우기 위해 왔다"는 정보가 간접적으로 전달될 뿐이다. 하쿠가 이름을 잃은 시점도, 코하쿠 강이 매립된 것과 욕탕 편입 사이의 관계도 직접 서술되지 않는다. 치히로와의 과거 인연이 후반부에 밝혀지지만, 그게 하쿠가 욕탕에 오게 된 이유와 연결되는지도 끝내 나오지 않는다. 하쿠의 서사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들이 전부 타인의 기억이나 추론으로만 채워진다.

 


5. 터널은 왜 거기 있고, 피해자는 왜 이 가족뿐인가

치히로 가족이 들어가는 터널은 일본 어느 동네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주택가 근처에 있다. 차로 접근 가능하고, 입구도 특별히 숨겨져 있지 않다. 그렇다면 이 터널로 빨려 들어간 사람이 치히로 가족이 처음일 리 없다. 영화 안에 다른 피해자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욕탕 세계에 인간이 들어오면 큰 소동이 나는 설정인데, 치히로 이전에 인간이 한 번도 오지 않았다는 건 터널의 위치와 맞지 않는다. 터널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왜 치히로 가족만 통과했는지 — 영화는 이 질문들을 아예 꺼내지 않는다.


6. 치히로는 돼지 무리에서 부모를 어떻게 알아보는가

클라이맥스에서 유바바는 치히로에게 돼지 무리 중 부모를 찾아내라고 한다(약 122분). 치히로는 몇 초 바라보다가 "여기엔 없어요"라고 답한다. 지브리는 팬 답장을 통해 "치히로가 고난을 이겨내며 사고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공식 설명했다. 그런데 그 성장이 화면에서 보이지 않는다. 공식 설명이 있다는 것과 영화 안에서 그게 보인다는 건 다른 얘기다.


결론

이 영화의 불친절함은 세 가지 효과를 낸다.

첫째, 설명되지 않은 것들은 신비로운 상태로 남는다. 기차가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는 순간 기차는 교통수단이 되고, 유바바의 행선지가 밝혀지는 순간 그녀는 출장 가는 관리자가 된다. 공백이 있어야 그 대상들이 정의 불가능한 것으로 남는다.

둘째, 설명되지 않은 세계관은 오히려 실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1부터 10까지 설명된 세계는 누군가 만들어놓은 세트장처럼 보인다. 맥락 없이 던져진 설정들은 "내가 모르는 규칙과 역사가 실제로 존재하나 보다"는 감각을 준다.

셋째, 미야자키는 시나리오 없이 콘티부터 그리며 영화를 만든다. 이미지가 먼저이고 설정의 근거는 뒷전이다. 구멍이 생겨도 굳이 메우지 않는 제작 방식이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관객을 이해시키려 하지 않는다. 치히로가 아무것도 모른 채 신들의 세계에 던져졌듯, 관객도 똑같이 당황한 채로 그 세계 안에 있게 된다. 불친절함이 몰입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