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트리니 리서치의 유령 GDP 보고서가 화제가 됐다. 그러자 이번엔 영국의 유명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반박 기사를 냈다.
A viral research note on AI gets its economics wrong
Too much of a good thing
www.economist.com
제목은 이렇다. "AI 바이럴 리포트, 경제학을 잘못 이해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씨트리니 시나리오는 말이 안 된다. 경제에는 자동 복원력이 있고, 정책 수단도 있다. 너무 겁먹지 마라."
들어볼 만한 주장이다. 근데 자세히 보면 빠진 것들이 있다.
이코노미스트의 주장 세 가지
이코노미스트가 내세운 논거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세이의 법칙. "생산은 스스로 수요를 만든다." AI가 소프트웨어 일자리를 없애도 다른 섹터가 흡수한다. 한 곳이 무너지면 다른 곳이 살아난다.
둘째, 씨트리니의 내부 논리 모순. "AI 기업들이 현금을 쌓으면 GDP가 오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디플레이션이 온다. 씨트리니가 말하는 '유령 GDP 급등'은 앞뒤가 안 맞는다."
셋째, 현실적 반론. "AI 기업들은 현금을 쌓지 않고 데이터센터에 재투자하고 있다. 게다가 금리 인하, 양적완화 같은 정책 수단이 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반박 ①: 세이의 법칙은 '시간이 충분할 때' 맞는 말이다
세이의 법칙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소프트웨어 직군이 무너지면, 가격이 떨어진 서비스를 다른 곳에서 더 사게 되고, 자원이 새로운 산업으로 흘러간다. 이 얘기는 경제학자들이나 관료들이 언제나 하는 얘기다. 이론적으론 맞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그 얘기가 맞아왔다. 그런데...
문제는 속도다.
농업혁명에서 산업화로 넘어가는 데 100년 걸렸다. 산업화에서 정보화 경제로 넘어가는 데 50년 걸렸다. AI는 그 전환을 5~10년 안에 압축하려 한다.
전환이 느리면 사람들이 적응할 시간이 있다. 부모 세대가 농부였어도 자식 세대는 공장에서 일할 수 있었다. 한 세대가 지나는 동안 학교 커리큘럼이 바뀌고, 직업훈련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이동했다.
근데 지금은 구조가 다르다.
2020년에 대학 입학하면서 UX 디자인을 전공으로 선택했다고 해보자. 그게 유망하다고 해서. 2024년에 졸업했더니 Midjourney, Figma AI가 이미 실무에 깔려 있다. 신입 채용이 줄었다.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도 인턴 자리조차 없다.
전공을 바꾸기엔 이미 4년이 지났다. 다시 배우려면 또 몇 년이 필요하다. 그 사이 학자금 대출 이자는 계속 나간다.
이게 한 명의 불운이 아니라 같은 해에 졸업한 수천 명에게 동시에 일어나면 어떻게 되나. 세이의 법칙은 "결국 다른 곳으로 흡수된다"고 말하지만, 그 '결국'이 10년 후라면 지금 당장 대출을 갚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다.
전환은 일어난다. 하지만 전환이 완료되기 전의 공백 — 그 구간에 낀 사람들이 쌓이기 시작하면 경제 전체가 흔들린다.
이코노미스트도 이 점을 알고 있다. 기사 중간에 케인스를 언급하며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일어날 필요는 없다"고 직접 썼다. 그러면서 결론에서는 "경제가 알아서 회복된다"는 식으로 마무리한다. 스스로 인정한 예외를 결론에서 다시 무시한 셈이다.
씨트리니가 주장하는 건 "전환이 불가능하다"가 아니다. **"전환이 충격을 따라가지 못하는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시간 동안 가계가 무너지고, 대출이 부실화되고, 소비가 꺼진다.
반박 ②: '유령 GDP 모순' 지적은 핵심을 비껴갔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썼다. "AI 기업들이 현금을 축적하면 GDP가 오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디플레이션이 온다. 유령 GDP 개념 자체가 내부적으로 모순이다."
날카로운 지적처럼 보인다. 근데 씨트리니가 말하는 유령 GDP는 '명목 GDP가 치솟는다'는 주장이 아니다.
씨트리니가 말하는 핵심은 이렇다. AI가 기업 생산성을 끌어올려 기업 이익과 주가는 오르는데, 그 과실이 노동자 소득으로 순환되지 않는다. 통계상 성장이 찍히더라도 그게 대다수 사람들의 실제 삶과 괴리된다.
현금을 쌓든, 데이터센터에 재투자하든, 주주 배당으로 가든 — 어느 쪽이든 해고된 기획자, 세무사, 디자이너의 지갑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결과는 같다.
이코노미스트는 'GDP 숫자가 어떻게 움직이냐'를 반박했다. 씨트리니가 실제로 묻는 건 **'누구의 소득이 줄어드느냐'**다.
반박 ③: 데이터센터 재투자는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보여준다
이코노미스트는 "AI 기업들은 현금을 쌓지 않고 데이터센터에 재투자하고 있다"며 수요 부족 우려를 반박한다.
그런데 데이터센터에 투자되는 돈은 누구의 소득이 되는가.
엔비디아 주주, 전력 회사, 부동산 펀드다. 해고된 기획자, 세무사, 디자이너가 아니다.
투자는 일어나고 있다. 돈은 돌고 있다. 근데 그 돈이 AI 인프라 생태계 안에서만 순환되고, 기존 소비 경제와 연결이 끊긴다면 — 그게 바로 씨트리니가 묘사하는 이중 경제 구조다.
세이의 법칙 식으로 표현하면 "생산이 수요를 만든다"는 맞다. 하지만 그 수요가 엔비디아 GPU를 사는 데만 쓰이고, 동네 식당, 헬스장, 여행사, 까페로 안 흘러가면 경제 전체로 보면 구멍이 생긴다.
반박 ④: "정책 수단이 있다"는 가장 낙관적인 가정이다
이코노미스트의 마지막 주장이다. "금리 인하, 양적완화, 현금 살포 같은 대응 수단이 있다."
맞다. 수단은 있다. 근데 이 주장에는 두 가지 전제가 숨어 있다.
하나, 정책 당국이 충분히 빠르게 대응한다는 것. 2008년 금융위기 때도 리먼브라더스가 무너지기 전까지 FED는 상황을 과소평가했다. AI발 고용 충격은 특정 날짜에 터지는 게 아니라 수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다. 그럴수록 정책 대응은 더 늦어지기 쉽다.
둘, 정책이 소득 재분배를 실제로 해낸다는 것. 금리를 내리면 자산 보유자에게 유리하다. 현금을 살포하려면 재원이 필요하고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 코로나 때 한시적 지원은 가능했지만, 구조적 소득 격차를 메운 적은 없다.
"대응 수단이 있다"는 "문제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가 올 수 있으니 수단을 써야 한다"는 방향으로 읽혀야 한다.
결국 이코노미스트는 무엇을 반박했나
이코노미스트 기사의 핵심 주장은 이것이다. "씨트리니 시나리오가 실현될 가능성은 낮다."
씨트리니도 동의한다. 보고서 첫 줄과 마지막 줄에 "이건 예측이 아니라 시나리오"라고 명시했다. 공동 저자는 "확률이 10%라도 충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지금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논쟁의 핵심은 가능성의 크기가 아니다. 충격이 크면 낮은 확률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100년에 한 번 오는 홍수라도 댐은 짓는다.
이코노미스트는 "댐이 필요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씨트리니는 "그래도 지금 설계는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쪽이 더 현명한 태도인지는 각자 판단하면 된다.
이 글은 씨트리니 리서치 보고서와 이코노미스트 기사를 바탕으로 한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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