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23일 미국 주식시장이 보고서 하나에 출렁였다.
https://www.citriniresearch.com/p/2028gic
THE 2028 GLOBAL INTELLIGENCE CRISIS
A Thought Exercise in Financial History, from the Future
www.citriniresearch.com
다우존스 -1.7%, 나스닥 -1.1%. IBM 주가는 하루 만에 13% 빠졌다. 비자, 마스터카드도 5% 넘게 내렸고, 소프트웨어 관련 주식들은 ChatGPT가 나온 이후 3년 동안 쌓아온 상승분을 하루 만에 다 반납했다.
이 소동을 일으킨 건 씨트리니 리서치(Citrini Research)라는 독립 리서치 하우스가 블로그 플랫폼 서브스택에 올린 글 한 편이었다. 링크가 퍼진 지 하루 만에 조회수 1800만. 거기에 영화 '빅쇼트'의 실제 주인공, 2008년 금융위기를 먼저 베팅해 수십억 달러를 번 투자자 마이클 버리가 이 글을 공유하며 한 마디 달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내가 비관론자라고?"
유령 GDP가 뭔데?
이 보고서의 핵심 개념은 유령 GDP다.
GDP는 한 나라 경제의 성적표다. 물건이 많이 만들어지고 서비스가 많이 팔리면 GDP가 오른다.
이런 상상을 해보자.
어떤 회사가 직원 100명을 AI로 대체했다. AI 덕분에 생산성이 올랐고 회사 실적도 좋아졌다. GDP 숫자도 올라간다.
근데 해고된 직원 100명은 더 이상 월급을 받지 않는다. 월급이 없으니 밥도 덜 사먹고, 여행도 못 가고, 옷도 덜 산다.
통계에는 성장이 찍혔는데, 실제로 시중에 도는 돈은 줄어든 것이다. 이렇게 숫자에는 잡히지만 실제 경제에서는 돌지 않는 돈을 보고서는 '유령 GDP'라고 불렀다.
"미국 얘기 아닌가요?" — 한국도 이미 시작됐다
이게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근데 한국 통계를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한국은행이 2025년 10월에 발표한 보고서가 있다. ChatGPT가 나온 2022년 11월 이후 한국 청년(15~29세) 일자리가 21만 1천 개 줄었는데, 그중 98.6%인 20만 8천 개가 AI 고노출 업종에서 사라졌다.
더 최근 통계도 있다. 2026년 1월 기준, 변호사·회계사·세무사·컨설턴트가 포함된 전문서비스업 취업자가 전년 대비 9만 8천 명 줄었다. 2개월 연속 사상 최대 감소다.
OECD 기준으로 한국은 AI 도입 기업 비율 세계 1위(30.28%)다. AI가 가장 빠르게 퍼지는 나라에서, AI에 가장 먼저 노출된 직군의 일자리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직군별로 구체적으로 보자.
기획·마케팅·HR 직군
지금 당장 ChatGPT에 "이 캠페인 기획안 써줘"라고 치면 그럴듯한 초안이 나온다. 현대차 그룹 광고대행사 이노션은 이미 사내 GPT로 마케팅 전략 수립을 자동화하고 있다. 포스코, 한화 같은 대기업들도 사내 AI를 전 직원에게 배포했다.
회사 입장에서 계산은 단순하다. 연봉 6천만 원짜리 기획자 한 명 vs 월 20만 원짜리 AI 툴. 퀄리티 차이가 줄어들수록 이 계산은 더 명확해진다.
지금 당장 자리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 채용이 줄어드는 것이다. 신입 자리부터 사라진다.
금융권 — 은행원, 증권사 애널리스트
여의도 증권가에서 요즘 이런 말이 나온다고 한다.
"AI 때문에 자리를 잃을까 걱정된다. 근데 AI 없이는 일도 못 하겠다."
실제로 증권가에서 "업무량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는 말이 나온다. 예전엔 종일 붙잡아야 했던 약관 수정, 서류 정리가 몇 시간 만에 끝난다. 애널리스트들은 데이터 정리를 AI에 맡겨 리포트 초안까지 뽑아낸다.
KB증권은 법무팀과 IB 부서 중심으로 AI 활용을 확대하고 있다. 다른 메이저 증권사들도 독립 AI 개발부서를 운영 중이다.
업무량이 절반으로 줄었다는 건, 같은 일을 하는 데 사람이 절반만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증권사 채용은 지금 '소수 대규모 채용 vs 다수 미채용'으로 양극화되고 있다.
전문직 —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자격증 있으면 괜찮지 않나요?"
통계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앞서 언급한 2026년 1월 통계에서 9만 8천 명이 줄어든 곳이 바로 이 직군이다. 변호사·변리사·회계사·세무사가 포함된 전문서비스업이다.
왜 이 직군인가. AI가 계약서 초안을 검토하고, 세금 신고서를 작성하고, 판례를 분석한다. 지금 당장 고연차 파트너 변호사 자리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 사람들 밑에서 일을 배우던 주니어들의 자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 주니어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디자이너 — 일러스트레이터, UX/UI, 영상 편집
"창의적인 일은 AI가 못 하지 않나요?"
사실 디자인은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직군 중 하나다. 예상과 정반대다.
광고 포스터 하나를 만들 때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외주를 주면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이 들었다. 지금은 ChatGPT 이미지 생성 기능으로 월 44,000원이면 된다. 외주 비용이 1,000분의 1 이하로 줄어든 것이다.
실제로 국내 기업과 공공기관의 행사 포스터, 광고 영상에 AI 이미지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디자이너한테 맡기던 일을 기획자가 직접 AI로 만들기 시작했다.
UX·UI 디자이너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앱 화면 하나 만들려면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수 주씩 작업했다. 지금은 텍스트 프롬프트 몇 줄로 프로토타입 UI가 나온다. 스타트업들은 초기 디자이너 채용 없이 AI로 제품을 만들어 출시하고 있다.
물론 고퀄리티 브랜드 아이덴티티, 정교한 사용자 경험 설계는 아직 사람 영역이다. 문제는 그 아래 단계 — 실무 경험을 쌓는 주니어 디자이너들의 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디자이너가 되는 경로 자체가 막히고 있다.
IT 개발자
"AI 시대에 개발자는 오히려 잘 나가지 않나요?"
맞다. 지금 AI를 잘 쓰는 개발자의 몸값은 올랐다. 근데 이게 함정이다.
개발자 1명이 AI로 10명 몫을 하면, 회사는 개발자를 10분의 1만 뽑는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이미 신호가 나오고 있다. 2022년엔 스타트업 입사자가 퇴사자보다 3만 명 더 많았다. 2025년 상반기엔 그 차이가 682명으로 줄었다. 연내 역전이 예상된다.
개발자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뽑는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줄어든 자리를 위한 경쟁은 더 치열해진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거야
각 직군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동시에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AI를 도입한 기업이 사람을 줄이고, 해고된 노동자는 소비를 줄이고, 매출이 줄어든 기업은 비용 절감을 위해 다시 AI를 더 도입한다. 이 흐름을 자동으로 멈추는 지점이 없다.
보고서는 이걸 한 사람의 이야기로 보여준다. 세일즈포스에서 연봉 1억 8천만 원을 받던 기획자가 세 번의 구조조정 끝에 우버 드라이버로 전직했다. 연봉이 6천6백만 원으로 줄었다.
보고서는 이렇게 묻는다.
"이 한 사람이 문제가 아니다. 이 패턴이 주요 대도시의 수십만 명에게 동시에 일어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과거엔 한 직종이 사라지면 다른 직종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이번엔 그 '옮겨갈 곳'도 AI가 대체하고 있다는 게 다르다. 밀려난 전문직이 더 쉬운 일자리로 내려오면, 거기 있던 사람들은 또 밀려난다.
그게 왜 금융 위기까지 가냐
직장인들의 소비가 줄면 기업 매출이 줄고, 집값도 내려간다.
미국의 주택 담보 대출 규모는 1경 9천조 원이다. 이 대출은 전부 "빌린 사람이 앞으로도 지금처럼 돈을 벌 것"이라는 가정 위에 세워져 있다.
2008년 금융위기랑 뭐가 다르냐면,
- 2008년: 처음부터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대출을 줬다
- 이번 시나리오: 대출 받을 때는 완벽한 우량 고객이었는데, 세상이 그 다음에 바뀐 것이다
신용점수 최상위, 계약금 20% 낸 사람들의 소득이 구조적으로 줄어든다. 기존 금융 위기 모델이 상정한 적 없는 경우다.
2028년 시나리오
보고서는 2028년 6월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형식으로 쓰여 있다.
결론은 실업률 10.2%, 미국 주가지수 고점 대비 -38%.
"결국 돌이켜보니, 우리 경제 시스템 전체가 '화이트칼라는 계속 잘 벌 것'이라는 가정 하나에 도미노처럼 엮여 있었다."
주택 대출도, 카드 소비도, 소프트웨어 구독료도, 펀드 투자도 — 그 가정 하나가 흔들리자 전부 같이 흔들렸다.
반박도 있다
당연히 과장이라는 시각도 있다.
"업무의 70%는 사람의 실시간 판단이 필요해서 자동화가 안 된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고, 도이체방크는 AI로 9천2백만 개 일자리가 사라지는 대신 1억 7천만 개의 새 일자리가 생긴다고 전망했다.
씨트리니 본인도 "이건 예측이 아니라 시나리오"라고 보고서 처음과 끝에 명시했다.
다만 공동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게 실제로 일어날 확률이 10%에 불과하다 해도, 충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지금 당장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투자자라면 뭘 봐야 하나
이 시나리오에서 살아남는 쪽과 흔들리는 쪽의 기준은 단순하다.
위험한 쪽: 사람의 소비와 노동이 있어야 돈을 버는 구조. 중간에서 수수료를 떼는 비즈니스. 사람의 귀찮음에 기대는 플랫폼.
덜 위험한 쪽: AI가 돌아가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들. 반도체, 전력, 데이터센터. AI가 더 발전할수록 오히려 수요가 늘어나는 영역.
보고서는 이렇게 끝난다.
"지금은 2026년 2월이다. 주가는 아직 최고치 근방이고, 나쁜 연쇄 작용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준비할 시간은 아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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